"쇼코, 넌 정상이 아니야."
남자는 사회적 동물이라서 말이지, 라고 그는 말했다.
"분방함이 쇼코의 매력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상식의 틀을 넘어서면, 나로서는 감당하기가 힘들어. 결국 내 자아의 문제란 생각이 드는군."
나는 지금 생각해도, 그가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어어."
거실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던 무츠키가 벌떡 일어나 책꽂이의 책을 한 권 바꿔 놓았다.
"왜 그러는데?"
아무것도 아니야, 라고 말하고 무츠키는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왜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야."
나는 짜증스러워 따지고 들었다.
"아까 내가 읽은 시집이잖아. 만지지 말라든지, 멋대로 꺼내지 말라든지, 똑바로 말하면 되잖아."
또 괜한 트집, 이라고 무츠키가 말했다.
"그런 거 읽고 싶으면 읽으면 되는 거지."
다만 책들이 분류되어 있으니까, 가르쳐 줄게.
"그녀, 단 것 좋아하나?"
"응."
그녀란 말이 어쩐지 천박스러운 느낌, 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마지막 전철을 타려면 슬슬 일어나야지."
라고 곤이 말했을 때의 방 안 분위기는 뭐라 형용하기 어렵다.
신나게 좋아하는 놀이를 하고 있는데 그만 하라고 하여 부루퉁해진 어린애처럼 순간 불만이 방 안을 뒤덮고, 다음에는 그 불만에 대한 어색함과 부끄러움이 스치고, 그리고 그런 감정 전부에 대한 놀람이 압도적인 지배력을 지니고 찾아왔다. 갑작스레 현실로 돌아온 듯한 기분.
"그러고 보니 아이스크림 있는데, 깜박했네."
라고 쇼코가 말했을 때는 모두가 현실 속에 있었다.
아무도 디저트를 먹고 싶어하지 않아, 한없이 계속될 것 같았던 밤은 돌연 끝이 나고, 우리들은 줄줄이 밖으로 나왔다.
언젠가 미즈호는, 남편이 출장이 잦은 게 유일한 불만이라고 했었다. 그리고 남편이 출장을 갔을 때마다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혼 초부터 날 혼자 태버려 두고, 도대체 왜 결혼했는지 모르겠어. 내가, 이미 낚인 물고기에게 무슨 미끼가 필요하겠어, 라고 심술을 부리자, 그런 게 아니고, 그도 물론 가기 싫어하지, 가면 혼자 외롭다고 하지, 라고 모순된 말을 거침없이 하고는, 쇼코는 내 맘 몰라, 라면서 진짜로 화를 냈다. 쇼코는 내 마음 몰라. 그러고 보니 요즘은 그런 전화가 걸려 오지 않는다.
"그래. 뇌과 의사가 나을 것 같아서."
"전혀 그렇지 않아."
퉁명스런 말투라, 나는 몹시 놀랐다.
"화났어?"
무츠키는 단박에 평소의 말투로 돌아와, 그런 게 아니야, 라고 말한다.
"그래서, 어떤 진단이 나왔는데?"
"영역 밖이래."
무츠키는 천천히 헛기침을 하면서, 나도 의사인데 말이야, 라고 말했다.
"안 돼."
나는 고개를 숙였다. 무츠키는 안 된다. 아무런 결과도 얻을 수 없다. 나는 점점 더 무츠키한테 의지하게 될 것이다. 내가 말이 없자, 무츠키는, 나 환자들한테 꽤 인기 있는데, 라며 웃는다. 그 무츠키답지않은 평범한 농담이 너무도 부자연스러워, 나의 가슴이 주글주글해졌다.
"선량하면 다 되는 게 아니야."
자기 말에 돋힌 가시에 놀라, 나는 황망하게 도너츠를 입 안 가득 물었다.
"무츠키, 은사자 얘기 알아?"
홍차에 럼주를 몇 방울 떨구면서 쇼코가 말했다.
"그거, 피하고 살이 어쩌구 하는 얘긴가."
쇼코는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아니, 라고 말한다. 아니, 전설이야.
"어어, 그래. 전설이야.'
나는 안심하여 럼이 들어 있는 홍차를 한 모금 마신다.
나는 수화기에다 대고 울음을 오아 터뜨렸다. 왜 울고 있는지 나도 몰랐다.
"목욕을 하면서 위스키를 마셨어. 무츠키는 전화도 해 주지 않았고. 야근할 때는 항상 전화했었는데. 도너츠 사 가지고 왔는데, 그런데 내가 심술궂게 대했어. 도너츠 사가지고 왔는데, 그런데 내가 심술궂게 대했어. 그러고 싶지 않았는데, 그런데."
마음 가라앉혀, 라고 미즈호가 말했다.
"너 투정부리는 거니?"
"아니......"
"아니긴 뭐가 아니야."
"하지만 다림질은 안 해도 돼. 벌써 날이 더우니까."
시트에 다림질을 하는 것은 겨울 동안의 습관이다. 대답이 없어서 나는 수돗물을 잠그고, 다림질은 안 해도 돼, 라고 큰 소리로 다시 한 번 말했다. 역시 대답이 없다. 돌아보니, 쇼코는 부엌 구석에 서 있었다.
"아니, 거기 서 있었어?"
"다림질하는 게 내 일이라고 했잖아."
절박한 표정으로 쇼코가 말한다.
"더우면, 식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자면 되잖아."
매끈한 시트, 좋아하잖아?
".......음, 그러지 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필사적인 얼굴이라, 수긍하는 외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무츠키는 마치, 양심이란 바늘을 잔뜩 곧추세우고 있는 고습도치 같다. 무츠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물론 나는 그게 죽도록 무서워서, 말따위는 사실을 말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 어째서 결혼 따위를 한 것일까. 왜 무츠키를 좋아하게 된 것일까.
"만약 무츠키가 사기를 친 거라면."
살랑살랑 흔들리는 빨간 생물을 응시한 채 쇼코는 말했다.
"나도 사기친 거지. 안 그래?"
잔뜩 생각에 골몰한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리고 있다.
"아버지는 통 아무것도 모른다니까."
아무래도, 나를 위로해 주고 있는 모양이다. 나는 순간 애틋한 기분이 들면서, 쇼코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긴 머리와 갸냘픈 어꺠와, 약간 홍조띤 뒷꿈치 등을.
한 일주일 정도 지나 그림은 완성되었는데, 일부러 내 방까지 찾아와서 그렸으니까, 틀림없이 무슨 특별한 그림일 거라고, 어쩌면 나의 초상을 그렸을지도 모른다고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그게 그냥 밤하늘을 그린 그림이잖아. 어둠 속에 수많은 별이 아로새겨져 있는, 그냥 그런 그림이었어. 그 그림을 나한테 주겠다고 하더군. 쇼코가 알 수 있을지 어떨지 잘 모르겠지만, 나는 그 그림이 고통스러운 러브레터라는 것을 알 수 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