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는 왜 이렇게 힘들까?"
초반은 다 좋습니다. 좋을 수밖에 없어요. 이때 모든 게 다 좋은 이유는 실제로 다 좋아서가 아니라 내가 제정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판단력, 세심함, 인내심 다 평소 수치가 아닙니다. 근데 이렇게 과하게 뜨겁지 않으면 연애라는 게 불이 잘 안 붙거든요. 그래서 필연적으로 좀 오바할 수밖에 없어요. 그래야 시동이 걸린다고요. 사실 우리가 연애라고 말할 수 있는 본질은 그 이후입니다. 연애가 삶에서 더 이 상 특별 이벤트가 아닐 때 진짜 연애가 시작되는 거죠. 이 때 건강한 연애의 요소는 뭐가 있을까요? 제 기준으로 세 가지를 꼽자면 안정적인 일상, 높은 자존감, 덤덤한 성격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보이는 요소는 정반대인 경우가 많죠. 불안한 일상, 낮은 자존감, 감정기복이 심한 성격. 여기서 아이러니가 발생합니다. 연애를 잘 끌고 갈 수 있는 자질은 전자인데 연애를 희망하고, 적극적으로 시장에 뛰어드는 쪽은 후자가 훨씬 많다는 거죠.
전자부터 이야기해봅시다. 우선 이들에게 연애는 선택입니다. 해도 좋고 안 해도 그만입니다. 연애가 없어도 삶이 풍요롭기 떄문이죠. 삶이 풍요롭다는 것은 일상이 잘 돌아가고 있다는 뜻입니다. 혼자라는 사실에 위태로움을 느끼지 않습니다. 연애가 급하지 않다는 것은 천천히 여유롭게 나랑 잘 맞는 사람을 찾을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합니다. 나와 잘 맞는 사람을 만나도 문제가 생길 텐데 이때 내가 여유가 있으면 훨씬 더 상대에게 너그러워질 수 있죠. 사소한 일에 일희일비하지 않기 때문에 큰 싸움을 만들거나 상대에게 상처를 줄 일도 적습니다. 무엇보다 이들은 연애가 별 거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연애를 잘 할 수 있는 거죠.
정반대인 후자를 볼까요? 이들은 연애를 갈구합니다. 연애에 대한 환상이 있죠. 연애를 하면 지루한 내 인생이 바뀔 거라는 기대가 있습니다. 한 사람으로 인해 구원받기를 바라죠. 이런 생각들은 불안정한 일상 속에서 더 강해집니다. 혼자는 외롭고 확신이 없기 떄문에 누군가가 곁을 항상 지켜주고 나를 괜찮은 사람, 사랑스러운 사람이라고 끊임없이 증명해주길 바랍니다. 이들은 이런 갈급이 크기 떄문에 천천히 사람을 살필 여유가 없습니다. 그저 다가오는대로, 기회가 닿는대로 술김에 손을 잡아서 그렇게 연애를 시작해버리죠. 나랑 잘 맞는 사람일 확률은 극히 낮은데 마음 같아선 천생연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실망감은 잦은 싸움을 만드는데 심적 여유가 없는 사람에게 반성, 이해, 조율은 어렵습니다. 늘 큰 싸움이 되기 쉽죠. 그러니까 연애를 너무 좋아해서 연애를 너무 아름다운 것으로 여겨서 이들은 연애를 잘 못 하는 겁니다. 이게 제가 생각하는 근본적인 이유입니다. 연애를 잘 할 사람들은 연애 시장에 모습을 잘 보이지 않는데, 연애하면 안 될 것 같은 사람들이 소개를 받고 앱을 깔고 주말에 풀 세팅으로 거리를 나섭니다. 우리에게 쉽게 닿을 수 있는 연애 대상들은 보통 연애를 못 하는 사람들이라는 거죠. 저 사람 연애하면 안 될 것 같다 싶은 사람일수록 쉼 없이 사람을 바꾸면서 연애 타령, 사랑 타령을 합니다. 여러 가지로 슬픈 일이죠.
행복한 삶은 가끔 있는 이벤트로 유지되지 않습니다. 무탈하게 굴러가는 일상에 소중함을 느끼고 그 안에서 소소하게 행복을 느끼는 거죠. 연애는 언제나 덤입니다. 연인으로 인해서 행복함을 느낀다면 당연히 좋은 일이겠지만 그 내 행복의 총책임자가 되거나 혹은 그것을 바라고 있다면 본인도 연애를 잘 하는 사람은 아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