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시간이 느슨해졌다. 어딜 가도 사람이 적다. 거리 위 부재를 초봄 햇살이 메운다. 그래서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고.
원래가 느린 시간을 살던 나는 이제야 세상이 내 속도에 맞기 시작했다고 느낀다. 겁들을 먹었고 몸을 사린다. 늘 그래왔구나.
단절되어 지냄에도 외롭지 않게 하는 것은 독서다. 27년 만에, 그러니까 태어나서 처음으로 진짜 독서를 하고 있다. 모르던 면을 안 후 친하다 믿었던 친구가 사실은 전혀 다른 사람이었음을 깨우친 마냥 신선하다. 그간의 독서는 아집과의 만남이었다. 내가 이렇게 불행해야 하는 이유를. 그게 내 책임이 아님을 책속에서 찾아내려 했다. 오기로 고집으로 책과 씨름했다.
그러니 독서가 결투같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결투는 끝나지도 않았다. 당연하지, 그런 마음으로 세상에 여남은 책을 모두 읽었던들 끝내 이길수가 있었을까. 사랑한다 여겼던 독서마저 길게 늘여 놓은 패배였는데... 상담 후로 많이 바뀌었다. 책과 대화하게 해 주심에 무엇보다 감사하다. 시의 아름다움을 발견함 또한 다시는 빼앗기고 싶지 않은 깊은 기쁨이다.
전에 가람이가 그랬다. 우리 몸도 사랑받는 걸 굉장히 좋아해서, 조금만 덜 사랑해줘도 아프다 아프다 아우성이라고. 무리한 날에도 안 그런 날에도 어깨와 목이 아프다. 살면서 이곳이 다시 좋아지는 날이 올까? 평생을 몸에 주는 사랑에 관심이 없었는데 몇 달 운동한다고 좋아지길 바라면 요행일지 몰라도. 방탄소년단이 새로 낸 곡의 안무 영상을 봤다. 보면서 내 마음과 내 골반과 내 목과 허리와 다리 근육과 관절들이 팔꿈치가... 아무튼 그런 것들이 아팠다. 앉아서만 살아온 나도 별 일 없이 목과 어깨를 망가뜨렸는데, 저들도 당연히 아플까. 아프다면 어디가 그럴까. 그들의 가사는 밝은 곡에서도 대부분 슬프고 아픈데. 사실은 높은 지위에서 오는 외로움, 고독... 이런 것보다 물리적으로 신체가 아파서 아팠던 거라면. 그들이 쌓아온 게 소용이 있을까. 또 이렇게 누가 시키지도 않은 실없는 걱정을 하면서.
그래도 참 자유로워 보이는구나. 아파도 춤이 나를 표현할 언어이기때문에 그래서 자유로워지기때문에 할밖이라면. 내가 우울 속에서 끊임없이 글을 써 나의 바다를 채우고 타인의 우울을 읽으며 해류를 부닥치고 수심은 깊어지고 그렇게 한층 더 자유로워지고. 그러니까 글을 읽는 것이 쓰는 것이 아파도 날 자유롭게 할 가장 예민한 언어라서 포기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원리라면.
더이상 그들을 부러워도 안쓰러워도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생각처럼 다 되면 세상에 열등감이 없긴 할테다.) 다만 궁금해는 진다.
춤을 자신과 소통하는 언어로 두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우리는 점차 더 자유롭기 위해 사는데. 모르던 언어를 하나 더 배우면 나는 더 자유로워질까. 몸을 움직이며 어깨와 목을 쓰고 굳어있는 그들이 마치 죽은 단어처럼 기능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속상해하고, 노력한다면 그게 자유한 발걸음일까. 아무튼 움직이면 덜 아플까.
아니면. 자유롭지 못했어서 아팠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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