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 8월
나의 삶은 짐작보다도 훨씬 더 유능감에 지배되어 온 모양이다. 스스로의 유능함을 확인하면 행복하다. 내가 이렇게 분위기를 잘 맞춰, 내가 이렇게 어른의 말을 잘 받아 줘, 내가 이걸 잘 하면, 저것도 잘할 수 있단 걸 보여 주면, 쟤보다 잘 하면... 버거운 대학 생활을 견디기 위해 나는 지속적으로 유능감을 선사해줄 활동을 미친듯 찾아다녀야했다. 그리고 고꾸라져있는 지금, 상담 선생님이 ~에 강박을 느낄 필요 없어요. ~라고 생각하지 않아도 돼요. 말해도 여전히 '왜 나는 바보 같이 이런 것도 못할까' 하는 언어로 다시 한 번 유능감이라는 칼을 꺼내어 든다.
선생님은 그것을 아버지의 망령이자 어머니의 아바타로 살아온 결과라 말한다. 단 하나의 줄자로 세상 모든 것을 재고 있단다. 그 줄자를 부술 수 있다면, 편하긴 하겠지. 그러나 의문이 생겼다. 그럼 나는 무엇으로 살아야 하지?
나의 유능감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면 나는 무엇을 행복이라 여기며 살아야 할까?
정말 타인은 나를 대함에 아무런 기대도 가지지 않는 무의 상태로 시간을 보낼까? (정말 모르겠다)
얼마 전 엄마랑 된통 싸우고 나서 눈물짓던 어느 밤에, 결론이 지어지기를.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그녀의 모든 조각을 내가 그저 군말 없이 이해해주기만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그녀가 가진 슬픈 공격성의 진짜 모습임을 밝혀내자) 엄마는 그녀의 부모에게도 그녀의 남편에게도 받지 못했던 무조건적인 사랑을 내게서 받고 싶어하는구나.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가능하면 정말 그렇게 해 주고 싶었다. 비록 건강하지는 못할지언정 엄마의 행복이 언제나 내 행복의 대부분이었으니. 그리고 치유함은 곧 치유받음이라 하니. 할 수만 있다면 모든 걸 주고 싶었다. 보호하고 다독여주고 칭찬해주고 응원해주고 상처를 돌아보게 해 주고 다시금 그녀를 재양육하고, 내가 그녀에게 받고 싶었으나 채워지지 못한 채로 퍼부어줘야 되게 생긴 것들에 묵묵해질 수 있는 멋진 어른이 빨리 되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그걸 할 수 있다는 생각조차 어쩌면 오만일지 모르고...
더욱 본질적으로 나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모두가, 내가 원하는 것, 내가 행복한 것을 하라고 하는데. 그것을 찾아가기에 내가 너무 늦은 나이가 아니라면. 이토록 엄마의 모든 욕구를 배제한 비전을 따라가도 죄가 되지 않는 거라면.
나는 무엇을 원하고 무엇에 행복한지.... 무엇으로 행복해야 하는지...
공허하여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이, 늘 괴로워했으나 점점 더 선명해질 뿐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내 삶의 가장 큰 물음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