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겐 금색의 투박한 팔찌 하나가 있다. 20년 넘게 애지중지 자주 끼지도 않고 두길래 나는 그게 순금인 줄로 알았다. 그런데 얼마 전에 알았다. 그냥 건강 팔찌였다. 금이 아니라 누런 쇠란다. 시어머니가 주신 건데, 그분께로 가며 팔찌를 실제 차는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복날 추어탕 집으로 향하는 고속도로였다.
할머니가 그거 준 거 기억은 하셔? 야무진 사람이 보인 미련스런 모습에 화가 났던 것 같다. 나만 화가 난다. 나만 여전히 화를 간직하고 있다. 엄마는 운전하며 그냥 그러게. 준 줄도 잊으셨겠다. 덤덤하다 혼자.
마주보고 추어탕을 먹으며 여쭈었다. 할머니 이 팔찌 뭔지 아세요? 무르고 말랑한 살을 가진 엄마의 팔을 건드리며 팔찌를 의도적으로 눈에 띄게 두었다. 그녀는 말이 없다. 당연한 거 아니야? 고까움을 감추며, '이거 할머니가 엄마 주신 거라던데요. 저는 팔찌를 모시고 살길래 금이라도 되는 줄 알았어요.' 늙은이의 주름에는 변화가 없다. 그 겹겹의 질곡이 내겐 그저 무의미하다. 기색도 바꾸지 않는 찬 눈빛에서 엄마만 변화를 읽고 회상을 거들었다. 왜 이렇게 살갑지. 엄마는 왜 이 사람에게 이렇게 살가워졌지. 왜 한 번 잘 해준 적도 없는 독한 어른을 향해 고작 팔찌 하나로 위안되어야 했을 인정 욕구를 가꾸고 살았지. 왜 이제 와서. 이걸 꺼내놓고 다니지.
엄마 인생은 이런 식이었다. 나는 그녀가 걸어온 길의 부조리들을 어떻게든 보상해 주고 싶어서 행복할 날에도 버겁다. 나라도 미워하고 싶다. 미련하게 착해서 엄마가 할머니에 대한 미움을 풀어내지도 못하고 다 잊어버렸다면 나라도 할머닐 외롭게 두고 싶다. 엄마를 괴롭게 하던 폭력에 대한 기억을 어디 해갈해보지도 못하고 묻어얄 바에야 차라리 내가 그날에 머물러 있고 싶다. 내가 대신 기억하고 싶다. 꾸준히 예민하고 싶다.
어쩌면 엄마는 다 잊어버렸을지도 모르는데. 가끔 나 혼자 옛날이구나 느낀다.
교회 영아부에서 봉사를 한다. 나만 청년이고 전부 어머니셔서, 어느 순간 나는 그들에게 충족받지 못한 진짜 엄마의 인정을 투영했다. 잘한다는 말이 나를 기뻐 괴롭게 했다. 그녀들의 실제 딸을 보고 시름에 빠져서는 이후로 매 주말마다 동티가 났다. 진짜 딸도 아닌 게 함부로 그들과 친밀하고 싶고 자랑이고 싶어 한다. 이 나이 먹고 갖는 유치한 감성이 역겨웠다.
나는 그런 마음을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채, 도망감을 돌파구로 삼으려 한다. 내가 쓸모있는 사람이라면 도망가지 않아도 될는지 모르지만. 쓸모에만 의존한다면 나는 만인의 첫째 딸 노릇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는 와중에 엄마는 나의 제주도행 여비로 기꺼운 것들을 잔뜩 주었다. 나를 사랑하나 봐, 들뜨려는 마음이 안절부절 위태로운 근래의 여름이었다.
한 사람의 비위에 집중되어 있던 예민함이 휴가를 명목으로 여러 사람을 만나며 분산되고 나른해졌다. 나를 사랑하는 듯한 이들의 따수움을 느끼면서 나는 드물게 내가 괜찮은 사람인 기분이 든다. 치밀하지 않아도 살아질 것 같은 하늘이 맑다. 내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 좋은 것으로 고르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줄줄이 잡혀 있던 만남이 오늘은 드디어 동나는 차례였다. 설거지를 하는데 울음이 났다. 일시적인 더위를 먹어 그랬겠거니 방으로 돌아와 불을 끄고 울었다.
엄마를 떠나서 행복하고 싶어질까봐 두렵다.
엄마 이외의 행복을 알게 될까 봐 두렵다.
나는 왜 이렇게 엄마에게 집착하지. 나는 왜 우울하지. 나는 왜 울지. 내 어릴 적에 사랑이 그리도 부족했을까. 참 유난인 것 같다 내가 떠나면 홀로 남을 엄마가 가여워서 견딜 수가 없다. 필시 엄마도 나 이외의 행복을 모를 것이다 이제는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19년 8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