를 토대로 작성한 글입니다.
개인적 백업에 의미를 둡니다. 연대 의지를 가진 여성 이외의 누구와도 논쟁하고 싶지 않습니다.
위 영상에선 ‘피해자 행세를 하며 무언가를 얻고자 하는’ 사건의 여성과 ‘약자임을 내세우며 사실은 절대 권력을 추구하는’ 골룸* 간 비유법 활용으로 둘의 본질이 같음을(혹은 같을 수 있음을, 같을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이로써 이 사건을 여혐범죄가 아닌 하나의 독립된 사건으로 보고자 하는 제작자의 의도가 드러난다. 그렇다면 사건 상 여성-남성의 관계는 무엇으로 지칭될 수 있는가? 소수와 다수는 아닐 것이고, 피해자와 가해자는 당연히 아닐 것이며, 조금 강경하게 고착하면 ‘위선자’와 ‘정직한 자’로 카테고리화할 수 있다.
나는 내가 출입하는 ‘ㄷㅁㅌㄹ’라는 사이트(구 ㅇㅂㅋㅁㄴㅌ 파생)에서 동시에 정보를 수집하려 했으나, 이곳은 여성 회원의 비율이 반대의 경우보다 높은 곳이다. 사회에서는 이러한 성격의 포털을 ‘여초 사이트’라 지칭하고 사이트 여성 이용자들을 악으로 치부한다. 이러한 점과, 나 스스로가 지금까지와 같이 본능적으로 쉽게 공감되는 여성들의 입장에 감정적으로 쉬이 휩쓸리는 과정을 답습하는 것이 아닌 오롯이 혼자의 힘으로 ‘흉자’스러운 가치관에서 독립하고자 하는 욕구를 가졌음을 감안하여 해당 논거는 ‘그쪽 발’ 정보를 전부 배제하고 해당 영상의 댓글에 달린 코멘트 속 정보가 진실에 가깝다고 가정한 후 전개하기로 한다.
사건의 시발은 여성 2인이 술집이라는 공공장소에서 남에게 들릴 만큼 큰 소리로 ‘6.9cm’, ‘내가 고추가 그 크기였으면 자살했다’ 등의 대화를 주고받은 것이다. 이는 매우 질 낮은 성희롱이다.** 이를 계기로 남성들과 시비가 붙었다. 여성이 먼저 남성의 멱살을 잡았다고 한다.*** 이를 ‘폭력 행사 또한 여성 쪽에서 우선되었다.’ 로 대체해 보자. 남성이 그에 상응하는 폭력을 행사했다.
다만 해당 영상이나 다수 댓글에서 ‘여자가 지 혼자 난리 치다가 넘어져 계단에 머리를 박은 것’이라는 의견만은 과도한 여성혐오 프레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라 판단하며 해당 의견의 원인 부분에 들어가야 할 명제는 남성의 폭력 행사로 볼 것임을 견지한다.****
어떤 사례들을 가져와 비견한들 종래에는 모든 비슷한 사례에의 검토 요구라는 끝없는 논쟁으로 이어질 것이며, 그런 다양하고 전반적인 사례를 검토한다면 결론은 남성의 잘못으로 이어질 것이기에 논지 전개에 함부로 여타의 경우를 끌어들이지 않도록 주의한다.
여성이 보편적인 남성성에 대한 모욕적인 발언을 했다. 해당 남성을 지칭한 것은 아니었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작태에 남성이 여성에게 주의를 주었다. 사건이 발생한 업장이 ‘술집’인 점을 고려하면 일견 타당한 행동임에도 개인의 감정이 개입된 최초의 시점으로 보인다. 남성은 해당 여성을 ‘지칭하여’ 모욕적 언사를 뱉었다. 여성이 폭력을 휘둘렀다. 폭력은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다. 이점을 명확히 한다.***** 남성도 폭력을 휘둘렀다. 이 또한 정당화될 수 없다.
쌍방의 폭력 행사가 과실 판단을 제로로 만든 걸까? 그러기엔 여성이 입은 상해가 다소 월등해 보인다. 남성은 눈에 잘 띄지 않는****** 상흔을 얻었고, 여성은 머리가 찢어졌다. 정신을 잃는 상황에 처했다. 여기서 제로가 아닌 썸, 즉 위계가 발생한다. 왠지 남성이 더 많이 잘못한 것 같다.
이 시점에서 주토피아가 떠올랐다. 해당 세계관에선 더 큰 힘을 가진 육식 동물이 초식 동물을 해치는 일 없이 원활한 공동체가 유지되도록 육식 동물은 다양한 핸디캡을 안고 살아간다. 이와 같은 원리가 현재 한국 사회에서 남성에게 동일하게 요구되는 덕목인 점을 대유할 수 있다. 그렇다면 발생한 ‘썸’에 대한 정당성을 부과하여 남성의 잘못을 다시 제로로 만들려면 ‘신체적으로 더 강한 남성이 여성을 배려했어야 하나 다소 부주의했다’ 정도의 판결을 내리면 좋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납득되지 않았다. 한국의 남성은 크거나 강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이러한 연유로 나는 이 사건에서 여성이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중간결론을 내렸다. 어떤 대상이 피해자로 판단된 이상 가해자를 색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가해자가 피해자가 입은 피해에 걸맞는 보상을 부여하는 일이 사회적으로 장려된다.
독립된 사건으로서 이 사건의 구성 인물을 판단하는 일은 여기서 끝났다. 이 사건이 여혐 범죄도 남녀 싸움도 될 일 없는 개인의 에피소드라고 본다면, 우리가 이에 대해 얹고 있는 다양한 의견들은 전부 불필요한 것이다.
그럼에도 발생하는 폭발적인 담론들의 양상을 분석해 보았다. 중립적 입장은 담론을 형성하기까지의 에너지를 갖지 못한다고 판단, 배제하였다. 다수의 여성이 여성들과 연대하고, 소수의 여성과 남성 전부가 남성에게 연대한다. 필자는 전자의 경우에 적을 둔다.
여성과 여성의 연대는 궁극적으로 해체될 것을 지향하고 나아가야 하는 발걸음이다. 연대해야만 무언가를 표현할 수 있는 상태가 영원히 지속되어서는 안 되며, 하나의 커다란 거대 담론이 세분화되어 그 작은 연대 각각도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회에서 우리는 또 각각과 싸우며 나아가야 한다. 사건의 여성이 실제로 위선이라는 의도를 가지고 개인의 문제일 수 있었던 에피소드를 정치화했다고 하자. 다른 한 여성이 위선의 존재를 인식하며 연대했다면 그녀에겐 작금의 세태에 필히 내고자 하는 목소리가 있는 것이다. 위선치 않았다 여기며 연대했다면 그녀에겐 해당 사건이 곧 자신의 이야기와도 같다고 여기는 중인 것이다. 이 장에서 여성이 연대함으로써 현재 쟁취하려 하는 것 일체에 대해 굳이 설명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기에 간략하며, 진보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그러나 무엇을 원인으로 남성과 남성은 연대했으며, 무엇을 목적으로 하는가? 이 점을 도무지 모르겠다. 잘못한 바가 없는데 가해자의 프레임을 쓴 남성에게 공감 능력을 발휘하여 강하게 감정 이입한 것인가? 그의 억울함을 풀어주려 하는가? 그러나 그는 정직하다. 정직하게 가해를 했다. 모든 요소를 고려해도 내게는 그가 타당한 가해자로 보이며.. 풀어주려는 억울함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여기서 발생하는 불필요한 연대가 내게는 2차 가해로 여겨진다.
이상.
* 유투브 이용자 Youngjun Sung
** 해당 문장과 이후 문장 사이에서 크게 중요하지 않은 인과와 요소는 생략한다.
*** 유투브 이용자 ‘정우혁’
**** 양측이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며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인간의 자연스런 습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인정한다. 또한 해당 글을 작성하는 시간대는 어떤 판단과 의견 개진도 ‘팩트’냐 아니냐로 판가름되기 부적절한 이른 시점이다.
***** 유투브 이용자 ‘Gauss Cauchy’의 댓글 : [어떤 경우에도 폭력이 정당화 될 수 없다라는건 그냥 여성들을 지키기 위한 말이죠. 사실 역으로 저렇게 뻔뻔하게 여성혐오발언을 하고 다니는 남자에 대해서 어떤 여자가 빰을 때리거나, 다른 남자가 폭력으로 이를 제지시켰다면 폭력이라는 수단에 사람들이 그렇게나 예민할까요 ㅎㅎ] 로부터 전개된 의견. 말 그대로 여성들을 지키기 위해 ‘폭력은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명제는 필수적이다. 해당 명제 외에 여자의 안전을 당위적으로 지켜주는 무엇도 확실히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 어떤 표현을 써도 중립적이어 보이질 않아 여러 차례 수식을 고쳤으나, 정말로 눈에 잘 띄지 않는 미미한 상처임을 그대로 표현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