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듣기)
감정적으로 힘든 작업이다 보니 하다 쉬고 하다 쉬고... 언제 다 하지?
일단 올리기... 원작자의 대사와 어순이 조금 다른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추후에 문맥 다듬을 것입니당
3분8초: 부모님과 싸우는 이야기를 그림으로 많이 그렸는데, 그럴 때마다 ‘어떻게 그렇게 싸울 수 있느냐’ ‘싸운 이야기를 그리는 것이 부끄럽지 않느냐?’ ‘나도 부모님과 사이가 좋지 않다’ 하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그러나 잘못한 건 부모님인데 내가 부끄러울 필요가 있는가? 부모님과 어떻게 하면 잘 싸울 수 있나?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4분 9초: 사람 간 갈등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부모님과의 관계는 너무나 밀착되어있기 때문에. 관계가 변화한 후, 즉 성인이 된 후의 나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부모님은 모르신다. 부모님도 성인인 자식은 처음이니까. 그래서 과거 자신이 사용했던 훈육 방식을 그대로 적용하려 하면 당연히 부작용이 일어난다. ‘내가 철이 덜 들었나?’ ‘내가 불효하고 있나?’ 라는 생각을 할 필요는 없다.
5분 3초: 사랑과 학대를 구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평소에는 누군가를 그냥 미워하면 되지만, 부모님과의 관계는 애증이 칡덩굴 나무처럼 얽혀 있기 때문에 그것이 잘 되지 않는다. 심리 상담을 받는 학생들이 ‘그래도 부모님이 너를 사랑하시지 않느냐’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고 하는데, 부모가 내게 폭력적으로 군 것·언어적·정서적 학대는 어찌되었던 학대이다. 사랑을 주는 것과는 별개이다. 부모가 나를 사랑해주었기 때문에 내가 이 학대를 용서하고 부모를 다 이해해야 한다, 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6분 경: 마음속에 분명 부모가 잘 대해 주었던 기억도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에도 지금 아빠와 말을 하지 않은 지 1년이 되어 가지만, 어릴 때 아빠가 목마를 태워 줬던 기억, 성인이 된 후에도 살뜰히 챙겨 주었던 기억들이 분명 남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빠가 내게 폭력적으로 군 것, 물건을 집어던졌던 것 등등이 상쇄되는 것은 아니다.
6분 50초: 부모님이 그래도 너를 사랑해, 부모님이 너에게 얼마나 잘 해 줬는데, 등의 말로 죄책감을 갖거나 마음이 약해질 필요는 없다. 그리고 기억해야 할 것. 부모가 자식에게 잘해주는 것은 호의가 아닌 의무이다. 양육은 사실, 부모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인데, ‘잘 해준다.’는 것을 그 범위에 넣어야 하는가?
7분 30초: 그 분류가 어렵다. 나를 씻겨 주고, 재워 주고 학교에 보내 주는 것은 엄마가 해야 하는 일이 맞다. 그러나 예를 들어 나를 피아노 학원에 보내기 위해 엄마가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하는 것. 이것 또한 의무인지 헷갈린다.
8분 경: 지금까지 너 키우는 데 들어간 돈이 얼마인데. 이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숨이 막힌다.
8분 9초: 나도 그렇다. 나는 선택권이 없었지 않느냐. 날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놓고. 내게 물어보았는지?(웃음) 엄마와도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 엄마가 하도 나가라고 구박을 해서(그만두었다).
8분 29초: 자식이 미성년자일 때 부모가 자식에게 해주었던 것들, ‘희생했다’고 말하는 것들은 개인적으로 자식이 스스로 그렇게 인정은 할 수 있어도 부모가 먼저 그것을 희생이라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9분 10초: 그 말 자체가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거지요.
9분 14초: 그렇다. 내가 내 선택으로 반려 동물을 데리고 왔는데 나중에 그 동물에게 ‘내가 너 때문에 얼마나 희생했는지 아느냐’라고 말하면 얼마나 웃긴가. 자식이 미성년자일 때 하는 양육도 같다고 생각한다. ‘내가 얼마나 ~했는지 아느냐.’라는 말 속에 ‘알아만 줘’라는 뜻만 들어 있는 건 아니잖은가. 그 속에는 ‘그런데 왜 네가 내 말을 안 듣니’, ‘그런데 왜 너는 내가 원하는 대로 하지 않니’ 라는 워딩이 들어 있다. 그런 식으로 죄책감은 계속해서 심어진다.
10분 경: 아 부모님은 자신이 선택해서 한 일을 희생이라고 생각하시는구나, 그런가보다(O), 아 부모님이 나를 위해 이렇게 희생하셨으니 내가 그것을 보상해 드려야겠다(X). 투자 대비 리스크를 고려했다면 펀드를 했어야 한다.
10분 40초: 우리 사회는 그런 면이 큰 것 같다. 부모님이 네게 잘 해 주었다. 부모님이 네게 희생했다. 마치 부모가 네게 한 것이 호의인 것처럼. 내가 부모 없이도 국가의 보호로 살아갈 수 있었는데, 부모의 양육이 너의 생존에 선택적이었다는 SF 소설처럼.
11분 20초: 그런 식으로 강자가 약자를 통제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세상이어서 그런 듯하다. 강자가 약자에게 그런 의식을 늘 심어 놔야 컨트롤하기 쉬우니까. 효, 군 등의 유교 사상이 전부 그런 것 아닐까 생각한다. 부모자식 관계에서 자식이 계속 약자 포지션을 유지해야 부모가 자식을 통제하기 편하지 않은가. 게다가 그 틀에서 벗어났을 때 부모가 자식을 비난하기 쉬운 구조 또한 마련되어 있다.
12분 5초: 또 한편으로는 부모가 포기한 것도 많다. 커리어, 금전 등등의 면. 사실이기는 해서, 그런 것을 아예 외면하는 것이 찝찝한 것도 사실이다.
12분 30초: 저도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그걸 내가 보상해 줄 필요는 없다. 커리어를 포기했다 했을 때, 원인은 내가 아니라 국가에 그걸 보완해 줄 시스템이 부재했던 때문이다.
13분 10초: 그것에 대한 책임을 아이에게 돌리는 듯 말해선 안 된다는 거죠? 그렇죠. ‘너 때문에 아빠랑 이혼을 못한다.’ 등의, 죄책감을 영원히 재생하는 말들. 모든 선택엔 책임이 따르는데, 왜 자녀는 성인인 부모의 선택에 책임을 공유해야 하는가?
13분 48초: 복지의 개념으로서의 효도도 우리나라에선 큰 개념인 것 같다. 재테크로서의 출산 또한 팽배한 인식이다. 엄마도 ‘너 애 안 낳으면 나중에 늙어서 어떡할래?’ 라는 말씀을 너무 많이 하신다. 미비한 시스템으로는 사람을 케어해줄 수 없기 때문에 그 역할을 가정으로 밀어 넣어 알아서 해결하도록 하는 크나큰 패러다임이 있다 생각하고, 이는 부당하다. 그렇게 자라난 사람은 다음 세대에도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나는 내가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진 않다. 그러나 나 또한 그렇게 컸기 때문에 그것 말고는 다른 방법을 아직 모르고, 그런 혼란과 엄마에 대한 양가감정 속에서 늘 싸운다. 내가 이것을 변화시키지 않고 그대로 살면 나중에 내 딸도 나를 보고 나와 같은 감정을 느낄 것이 아닌가. 너무 힘든 문제이다.
15분 13초: 그러니까 지금부터 잘 투쟁하셔서(웃음) 대물림되지 않도록 노력하자. 시스템도 필요하다.
15분 30초: 저는 우리 사회에 ‘부모는 성인이다’라는 인식이 부족한 것 같아요. 가져야 할 책임과, 감당해야 할 것들. 이것의 주어가 성인일 때는 잘 받아들여지는데 왜 부모가 되면 당연하지 않아지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예를 들어, 부모와 갈등을 겪을 때 자식이 많이 느끼는 감정 중 하나가 ‘이러면 우리 부모가 슬퍼할텐데, 실망할 텐데.’ 부모와 갈등을 겪을 때 자식들이 걱정하는 것 중에 하나가 ‘내가 이렇게 하면 부모가 실망하지 않을까?’ 가 있다. 그러나, 우리의 부모도 완벽한 사람이 아니었다. 우리 부모도 우리에게 숱한 좌절과 절망을 준 사람들이다. 나 역시 부모가 돈을 더 많이 벌길 바랐고, 적어도 내 앞에서는 싸우지 않길 바랐다. 그런데 왜 부모는 좌절을 겪으면 안 되는가? 예를 들어, ‘내가 퇴사하면 부모님이 실망하실 거야.’ 혹은 ‘내가 이 사람이랑 결혼하면 부모가 탐탁치 않아할 거야.’ 라는 고민을 하는 친구를 주변에서 많이 보았다. 이것은 부모가 견뎌야 하는 일이다. 어찌 좌절 없는 인생을 살겠는가.
17분 경: 그런 고민을 하는 이에게 부모가 ‘내가 너보다 인생을 더 많이 살았기 때문에 보는 눈이 있다. 어른이 하는 말을 들어야 한다. 내 말을 듣지 않으면 후회할 것이다.’ 라고 말하는 경우를 자주 본 기억이 난다. 마치 모든 어른에게 혜안이 있는 것처럼. 나 스스로는 그것이 정당하지는 않다고 생각하지만, 분명 흔들리는 면도 있다.
17분 20초: 내가 그랬다. 너 꼭 교대 가라고, 교대를 가지 않으면 나중에 취업할 때 무조건 후회한다고. 아니면 사범대라도 가라. 그리고 진짜로 교대 갈걸 후회중이다.(웃음) 지금은 웃으면서 이야기하지만, 물론 그 때 부모의 말만 듣고 내 적성에 대한 고려 없이 사범대를 갔다면 내내 후회했을 것이다. 지금에 와서는 그 말의 유용성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 말의 뜻을 그때라고 아예 몰랐던 것은 또 아니고. 단지 나의 선택은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부모님들은 내가 그 말의 뜻을 모른다고 단정 짓는다. 어른으로서 조언을 해 줄 수는 있지만 선택의 주체는 나이고, 선택에 대한 책임은 내가 지는 것인데. 부모는 나의 어떤 선택에 개입했을 때 그에 대한 책임을 다 지고 있는지. 살펴 볼 필요가 있다.
19분 20초: 어떤 선택의 기로에서 부모와 충돌을 겪을 때-충돌은 당연히 겪을 수 있다. 부모도 자신의 의견을 자식에게 이야기할 수 있으니까. 그러나 성인 대 성인으로 얼마나 서로에게 예의를 차리고 있는지 늘 살펴야 한다. ‘너 지금 사귀고 있는 사람 별로인거 같아.’ 라는 말은 기분은 나쁘지만 친구 사이에서는 할 수도 있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부모 자식 간에는? 훨씬 더 기분 나쁜 이야기이다. 자식은 기본적으로 부모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있으니까. 그러나 그 대화가 부모의 개인적인 감정을 잠시 접어둔 채 거기서 끝나는지, 아니면 ‘그런 사람을 만나다니, 너 어떻게 엄마에게 그럴 수 있니. 헤어져라.’ 하면서 휴대폰까지 빼앗는 처사를 보이는지. 이런 자식을 전혀 존중하지 않는 태도이지 않은가. 누구이던지, 내 삶을 존중하지 않고 내 바운더리를 침범했을 때는 싸워서 그 사람을 내쫓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게 부모일 때라도 마찬가지로. 그러나 부모는 그냥 타인이 아니라 많은 애증과 관계가 얽혀 있는 타인이기 때문에 더 많은 정신의 무장이 필요한데, 나는 그때 ‘더 아쉬울 게 없는 사람이 강자이다.’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20분 40초: 친구들이 부모님과 싸울 때 보면, 아직도 자기가 어리다고 자신은 아직 어린 아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우리는 인생의 최초의 경험으로부터 부모를 강자라고 여기고 살아오지 않는가? 그래서 자기가 다 컸는데도, 여전히 부모가 나보다 더 강하고, 부모와 나의 사이가 틀어지면 나에게 손해라고 생각하고, 그래서 겁을 먹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막상 싸워 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옛 어른 말씀 중에 틀린 말이 (있지만) 없다고 가정하면,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라는 말을 늘 실감한다. 부모가 물론 자식에게 물리적인 무언가를 자식에게 주어 왔지만, 마찬가지로 자식에게 받은 것 또한 매우 크다는 것을 잘 인식하지 못한다. 부모도 잊어버리지만, 자식도 자신이 무엇을 주고 있는지 잘 모른다.
21분 50초: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다지 대단한 인생이랄 게 없지 않나. 하나하나 다 시시한 인생을 산다. 그런데 그런 개개인을 너무나 소중히, 너무나 대단하게 여겨 주는 존재-자식이 나타난 것이다. 그래서 늘 그의 안색을, 안위를 살피고, 마음에 들고 싶어 하고. 그런 존재는 부모에게도 강력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22분 18초: 5년 전 쯤, 엄마와 크게 싸우고 대화를 중단해 보았다. 처음엔 엄마도 당연히 내가 굽히고 들어올 줄 알았나 보다. 그런데 두 달쯤 대화를 하지 않아 보니, 엄마가 내게 주고 있었던 게 별로 없었다는 걸 알았다. 난 늘 엄마의 비위를 맞춰 주고, 재밌는 이야기를 해 주고, 엄마의 기분이 별로인 것 같으면 눈치를 보고. 그렇게 하지 않아도 내게는 아무 영향이 없었다. 그리고 엄마는 나에게 그렇게 해주지 않고 있던 것이었다. 결국 더 사랑하는 사람이 강자가 되는데, 부모는 늘 자신이 자식을 더 사랑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더 부모를 더 사랑하고 부모를 더 필요로 하는 것은 자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식이 강자다. 이점을 깨달으면서 부모님과의 전세가 역전되었다.
23분 20초: 성인만 되어도 그걸 바라보는 눈이 생기는데, 미성년자 때는 힘들다. 저도 미성년자일 때는 너무 괴로웠고 답이 없었다. 부모가 자기를 학대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부모가 너를 사랑해서 너를 때리는 것이다. 너는 맞아도 되는 사람이다. 혹은 다들 맞으면서 큰다, 라고 말한다. 그러나 저는 정서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내게 가해지는 폭력이 당연한 상황은 절대 없다고 생각한다. 이성적인 상황이라면, 부모가 뭔가 내게 부당한 대우를 할 때 다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있다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는 그런 매개가 부족하다. 그래서 이를 갈며 견뎠고, 내가 크면 복수할거다, 라고 말했다. 실제로 언젠가는 그런 순간이 온다.
24분 50초: 부모를 욕하는 것부터 시작하면 좋겠다. 부모를 무서워하게 되면 답이 없다. 부모에게 가야 할 분노의 화살이 내게 꽂히기 때문이다. 내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부모 앞에서 하는 게 힘들면, 자기 안에서, 혹은 친구에게라도 욕을 해보라. 부모가 나를 때릴 때, 학대할 때, 그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내 안에서라도 인지할 수 있어야 버티는 힘을 기를 수 있다.
25분 20초: 부모와의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어떤 분은 회피할 것이고, 어떤 분은 ‘그래 늙은 부모 이겨먹어서 뭐 하냐’라고 둥기둥기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싸우는 법에 대해 말하자면, 싸움은 ‘이기려는 마음’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 싸움으로 얻고자 하는 점이 무엇인가? 를 생각해야 한다. 부모와의 싸움에서는 결국 엄청나게 많은 정서적 에너지가 소모된다. 나와 가장 닮았으면서 내가 가장 싫어하게 된 그의 태도를 나도 결국 가지고 있다. 그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마음을 가지고 지낸 세월이 길고, 참으로 다양한 이유로 싸우게 된다. 내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에너지의 50~60%를 소모하는 것은 기본이다. 나는 왜 싸움을 하는지. 내가 이 싸움에서 지키고 싶은 게 무엇인지. 이걸 확실하게 해야 지치지 않는다.
26분 40초: 제가 엄마와 싸웠던 이유는 엄마가 저를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여겨서였다. 엄마가 기분 나쁜 일이 있으면 그 사람에게 가서 싸워야 하는데, 엄마 역시 갈등을 싫어하는 사람인지라 가장 만만한 큰딸에게 그걸 풀었다. 밖에서 기분 나쁜 일을 겪고 돌아와서 나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거나, 내가 우연히 싫어하는 사람과 비슷한 짓을 하면 엄청나게 비난을 하는 거다. 내가 어릴 때는 ‘엄마가 왜 저러지? 내가 잘못했나 보다.’ 라며 혼란해했지만 커가면서 알 수 있었다. 나의 이런 점에 화를 내는 것은, 고모에게. 친할머니에게 화를 내야 할 것을 나한테 하고 있는 거구나. 이 점을 생각하니 ‘이걸 내가 그냥 받아주면 안 되겠구나’ 가 되었다. 그때부터 엄마에게 엄청 화를 냈다. 상대에게 화를 내는 것보다 내게 화를 내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내게 화를 내는 일도 그 다른 이들에게 화를 내는 것만큼 안 좋은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알려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고모에게 화내야 할 것을 내게 화내고 있으면 고모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가 할 말이 있는 것 같다면서. 나는 함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를 말하고자 했다. 아빠와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이 싸움을 왜 하고 있는 건지. 부모가 원하지 않는 결혼을 강행하려 하는 건지. 부모가 좋아하지 않는 직업을 가지려 하는지. 부모가 주는 악영향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려 하는 건지. 그게 내게 그만큼 소중하기 때문에 싸우는 것 아닌가? 마음을 무르게 먹지 말고 끝까지 지켜나갔으면 좋겠다.
29분 20초: 부모와 싸우다 보면 나도 많이 상처를 받는다. 나의 약점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것도 부모이고, 부모님이 나를 비난하는 시선으로 나도 나를 비난하게 되기 때문에. 나의 경우엔, ‘철없다’라는 말이 가정에서 큰 모독 같은 거였다. 그래서 내게는 철드는 일이 매우 중요했다. 부모에게 화내는 것도 유치하고 철없는 행동으로 자주 비춰지지 않는가? 그래서 내가 부모에게 화를 내면, 내가 정당한 이유로 화를 내게 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이렇게 감정적이고 철이 없을까?’ 라며 스스로를 자책하곤 했다. 충분히 내 편이 되어주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부모님과 싸울 때에는 내 안에 확실한 내 편이 있어야 견딜 수 있더라. ‘부모와 싸우는 건 철없는 짓이다’라는 생각이 깨진 건, 우리 엄마가 50대 후반이 되어서 조부모와 울며불며 화를 내는 것을 본 이후이다. 엄마도 자신의 부모에게 쌓인 게 많았는지, 그 노쇠한 조부모에게 물건을 던지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걸 보며 ‘아! 나는 늦지 않았구나.’ 우리 부모님처럼 다 늙고 저러느니, 우리 둘 다 힘이 있을 때 해야겠다.
31분 10초: 애인이 생기거나 하면, 다른 내 편이 존재하게 된다. 부모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늘 모자라고 감정적이다. 그랬던 것들을 애인, 친구, 혹은 상담자의 눈으로 보면 다 상처 입은 마음의 발현인 점을 인정받으며 지지대가 생긴다. 그렇게 싸울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부모와 인생의 어떤 메이저한 일로 싸울 일이 생긴다면, 상담을 받는 게 좋은 것 같다. 심리 상담자라는 타인이자, 권위자이자, 전문가가 내 편이 되어준다는 게 정말 큰 힘이 된다. 엄마랑 두 달 동안 말 안하던 그 때에도 사실 상담을 받던 중이었다. 내 안의 불편한 점들을 상담자에게 많이 이야기하고 의지하면서 겪어낼 수 있었던 듯하다. 실제로 엄마가 나를 타인으로 존중하기 시작한 것도 그때였던 것 같다. 엄마는 내가 스물다섯이 되었는데도 나를 ‘딸’로만 생각했다. 매우 무례하게 굴었고, 다른 성인이라는 객체로서의 대접이 없었다. 엄마가 나를 지속적으로 그렇게 대하면 엄마와의 관계를 끊겠다는 제스쳐를 취하니, 그때부터 엄마가 나를 존중하기 시작했다.
32분 49초: 객관적 관찰자는 정말 필요하다. 가족 문제로 힘들면 객관적일 수 없지 않은가. 내가 무언가 그 이야기를 했을 때 객관적인 상황을 봐 줄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좋을 것이다.
33분 10초: 가족 이야기는 아무리 친한 친구에게라도 이야기하기 힘들지 않은가. 어쨌든 상담 선생님에게는 솔직한 이야기를 할 수 있으니까 좋다.
33분 25초: 나도 가족 이야기를 남에게 하기 수치스러워하고. 점점 더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런 경향이 있었다. 30, 40대가 되면 부모에게 잘 해야 할 것 같고. 철들어야 할 것 같고. 효도해야 할 것 같고. 그런데 사실, 어릴 때 받았던 상처가 나이가 든다고 갑자기 후루룩 나아지진 않는다. 자신의 싸움을 나누는 게 중요하다. 나도 부모와 싸울 때 힘들었던 것들을 그림일기로 많이 그렸는데, 나만 그런 줄 알았으나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이 너무 많았다. 우리 부모 세대는 자식을 어떻게 키워야 할지 모르고 성숙한 이야기들이 오갈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다. 그래서 상처받은 자식들이 참 많더라. 그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내 상처가 이상한 게 아니구나. 유난스럽거나, 철없는 일이 아니구나 하는 점을 알게 되면서 힘을 얻을 수 있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도, 부모와 갈등이 있거나. 혹은 갈등까지도 가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는 이들에게 ‘싸울 수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저는 부모와의 싸움을 싫어하지 않는 편이기 때문에 부모와 싸워야 할 때가 있다면 싸워라, 라고 권하는 편이다.
35분 20초: 그럴 때 듣는 질문들도 같이 나눠보자면, 이런 때 참 애매하다. ‘성인인데 부모에게 얹혀살고 있을 때.’ 그 다음이 결혼할 때. 다 가질 순 없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자기 마음대로 살고 싶다면 그만큼의 책임을 져야 한다. 내가 성인인데 부모에게 용돈을 받으며 생활하고 있다면, 부모가 ‘너 용돈 끊어버리겠다’고 협박했을 때 정말 받지 않을 각오를 해야 한다. 앞으로도 받을 거라면, 어쩔 수 없이 부모에게 맞춰줘야 하는 부분이 있음도 인정해야 한다.
36분 30초: 그건 자연스럽게 되지 않나요?(웃음) 노력하는 게 아니라 저절로 그렇게 되잖아요.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걸.
36분 40초: 나는 안 받았다. 그래서 대학생 때 굉장히 가난했지만 아쉬운 소리 듣지 않을 수 있음이 참 좋았다. 빨리 독립해야 한다는 생각, 이를 악물고 살 수밖에 없었던 시간 때문에 잃은 것 놓친 것도 분명 있지만 그로 인해 독립적인 삶을 살 수 있었던 것도 나의 선택의 결과이다. 나는 엄카 쓰는 게 너무 좋다. 그렇게 편하게 사는 삶을 선택하는 것 대신에 엄마가 원하는 것들. 이를테면 통금 등을. 맞춰줄 수 있어 뭐 어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본인이 원하는 것을 지켜가는 게 좋다. 성인이 된 이후엔 내가 원하는 것을 다 가질 순 없다는 것을 배워가야 한다.
37분 58초: 우리 나이 때 부모와 갈등하는 가장 큰 원인은 결혼. 우리 주변에서도 굉장히 많은 사례를 본다. 맏이의 경우에 그 반대가 더욱 극렬한 것 같다. 부모가 왜 우리의 결혼을 반대하는지를 생각해 보면, 떠나보내기 싫은 마음도 있고, 결혼하면 정말 성인이 되어서 나가는 것이기에. 더 이상 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거리로 멀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본능적인 위협을 많이 받는 것 같다. 그래서 내가 결혼에 반대함으로써 마지막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부모 입장에서는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결혼에 반대하는 것이 무조건 유리한 게, 나의 반대로 그들이 헤어진다? 그럼 안 했으면 좋은 거고, 강행하면 그걸로 지속적으로 죄책감을 심어줄 수 있는 거다. 너 내가 그 결혼 반대하지 않았냐, 왜 그 결혼을 해서 그 고생을 하는 거냐. 그런 모든 상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
39분 20초: 나의 경우에, 아빠에게 누굴 데려가도 반대를 했었다. 누구를 데려와도 성에 차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 이건 그냥 그러려니 해야겠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39분 38초: 우리 엄마는… 정말 이상한 분이죠. 남편이 남자친구였을 때 내 초상화를 그려 선물한 적이 있다. 어느 날 보니 그 얼굴이 바뀌어 있는 것이다. 엄마가 ‘어? 이거 얘 좀 안 예쁘게 나왔는데?’ 싶어 지우개로 지워서 다시 그린 것이다. 엄마는 광기도 있지만 이성도 있는 분이라, 나중에 설명을 해 주셨다. 내가 너를 남자친구에게 뺏기는 것 같았다고. 그래서 스스로가 남자친구와 경쟁하는 것 같은 마음에, 내가 네 남자친구보다 잘하는 게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하셨다. 우리 엄마는 그 정도로 구분이 없었던 것이다. 내 소유물이 더 이상 아니라는 마지막 불안함 때문에. 멀쩡한 어머니도 자식이 결혼한다고 하면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을 종종 하신다.
41분 20초: 나는 결혼할 때, 이제 내 가족은 내 남편이다. 이제 우리 둘이 가족인거다. 라고 생각하며 그런 방해 행동은 부모에게 손해라고 생각했다. 부모도 그렇지만, 자식도 부모가 남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나는 더 이상 부모의 마음에 드는 행동을 하지 않아도 된다. 부모 역시 나를 더 이상 인정하지 않을 자유가 있다. 내 결혼을 축복하거나 하지 않는 것도 부모의 자유이다. 그러나 나는 얘랑 결혼을 할 거고, 사위를 얻거나 딸을 잃거나 중에 선택해야 한다. 내 가족이 내 파트너라는 점을 명확히 인지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42분 40초: 부모와 싸우기보다는 맞춰주고 싶다고 생각하는 분도 있을 것이다. 당연하다고 생각해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싸움만이 방법인 것은 아니니까. 제가 제시하는 것은 싸울 때의 방법인 거고, 이런 점들이 도움이 되었음을 알리고 싶은 것이다. 반드시 부모와 불화를 일으켜라! 고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성인이 되어서 부모와 마찰을 빚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임을 우리가 인지한다면 우리 마음이 덜 괴롭지 않을까?
43분 30초: 저는 얼마 전에 트위터에 이런 글들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우리는 항상 자식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느냐? 부모의 입장에서 자식의 한마디 한마디에 신경 쓰고 내가 이 아이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을까 걱정하는 글이었다. 그걸 보면서, 내가 언젠가 부모가 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언젠가는 성장하는 부모가 됨으로써 이런 일로 많이 상처받게 되겠구나, 싶었다.
44분 50초: 이미 부모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분들은 우리가 사용하는 워딩이 과격하다고, ‘얘네 왜 이래’라고 생각하실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하지만 싸운다는 것도 결국 우리가 그들과 더 잘 지내기 위해 택하는 전략이니까. 그 점을 깔고 가는 게 좋겠다. 서로 서툰 건 어쩔 수 없지. 어떻게 관계를 지속할 것인지 고민하는 것은 필요하다. 서로 고민하고, 맞춰 주고, 인정해 주고. 평생 볼 사이인데 이런 것들이 당연히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보통은 그런 일의 초점이 주로 자식 혹은 아랫사람에게 맞춰져 있으니까.
45분 50초: 우리 사회는 그런 아랫사람에 대한 화나 희생이 너무나 고착화되어 있었다. 경각심, 반성, 자각을 갖는 일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46분 16초: 저는 부모가 과도하게 자책하는 것도 결국 자신의 영향력을 과대평가 하고 있는 거란 생각을 한다. 자식과 무언가 트러블이 생긴 데에는 자기 책임도 있겠지만 결국 자식의 몫도 있는 거다. 그러나 부모가 자책하는 것까지 자식이 필요해 줄 일은 아니다. 부모가 스스로 심리 상담을 받으면서 이건 내가 반성해야 할 문제였다, 이건 내 책임이 아니었다, 구분해야 하는 것이다. 저도 부모님에게 화나는 점이 있고, 부모님이 잘못한 점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의 모든 문제의 원인은 100% 부모님이다-이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