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 |
아름다운 당신을 사랑해요. 당신은 추함에 계속 실패할 눈부심. 아름답지 않을 수 없는 가여운 몸으로 왔어요. 남김없이 주세요. 전부 나의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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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
행복은 커다랄수록 얇은 유리그릇처럼 깨져 나간다. 얇고 작은 파편이 생에 박히면 온 생에 걸쳐 그 행복을 앓게 된다. ‘있었다’의 형태로 실존하는 부재만큼 잔인한 게 있을까, 그래서 너무 좋은 것은 너무 나쁜 것이 되곤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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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
나는 그러니까, 변명 같은 건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변명이고자 하는 변명은 어디에도 없었으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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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이 잔인하다는 걸 아는 사람들만이 다정해지곤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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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배를 매만지면서 멋쩍게 웃곤 했다. 아무리 늙어도 엄마의 얼굴은 배에 있는 튼살만큼 주름지지 못할 테고, 바꿔 말하면 엄마의 배는 엄마보다 너무 일찍 늙어 있었다. 엄마가 곁에 찰팍 앉은 내게, 아니지 엄마 숨겨둔 뱃살 있지 그치, 물으면 나는 엄마 예뻐요 엄마 날씬해요 대답했다. 흰 머리카락 하나에도 맘 상해하는 엄마가 튼살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거나 속상해하시는 걸 본 적은 없다. 꽤 오랫동안 신기했었다. 나 같으면 배를 도려내고 싶었을 텐데. 매일 울었을 텐데. 이제 내가 보지 못했던, 볼 수 없었던 것들을 상상한다. 나와 남동생, 여동생 쪼로록 잠든 밤에 일어나 앉아 배를 들춰 보며 조용히 울었을 사람. 퇴근 후 옷을 갈아입으며 멈칫하다 길게 숨을 내쉬었을 사람.
피부가 악을 쓴 흔적이, 제 자식들이 입을 벌려 숨을 쉰 흔적이 비늘처럼 엄마 배 위에 똬리를 틀고 있다. 가만히 나를 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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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영원히 일곱 살에 살 거라고. 그러니 그 세계를 예쁘게 꾸며 주자고. 우리는 그 바깥을 지켜 내자고. 그렇지만 너는 자주 울며 집에 왔고, 오늘은 누가 놀렸으며, 마음이 괴롭고 아프다고 말했어요. 선생님은 무시하라고만 한다고. 근데 언니, 무시가 안 된다고. 너무 어렵다고 했어요. 나는 그들을 찾아가 욕을 하고 침을 뱉고, 무시해 보라고 하고 싶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우는 너를 안아 주거나, 프렌치토스트를 만들어 주거나, 하굣길을 마중 나가는 것들뿐이었고. 언젠가 너는 엄마를 붙잡고 언니를 낳아 주어서 고맙다고 얘기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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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여쁜, 눈부시게 빛나는 나의 겉들 |
사랑한답시고 사랑해 온 것들은 전부 겉일 수밖에, 깊어질수록 인정하게 됩니다. 감히 전부라 말할 수 없습니다. 닿을 수 있는 모든 것은 겉, 품도 겉이니, 모든 포옹은 거짓말. 서로의 표정을 가려보는 가장 완벽한 외면입니다. 다만 전해지는 체온으로 진실합니다. 당신들의 안을 사랑하고 싶어서 내내 겉을 안고 있습니다. 사랑하고 싶어함도 사랑이라 부를 수 있겠습니까. 부를 수 없다 해도 별수 없이 그러고 싶습니다. 완벽은 본디 기형입니다.… 내가 예민하고 조심스러운 사람인 것은 많은 이가 알지만, 그런 나를 조심스레 대해 주는 이는 많지 않습니다. 소중한 것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도 적지만, 소중한 것을 소중히 대할 줄 아는 사람은 귀합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귀해 다행입니다. 코가 냄새에 쉬이 익듯, 자신의 눈물에 익으면 어느새 스스로 애도할 수 없게 됩니다. 내게 당신이라는 눈부신 타인이 선물로 주어지고, 당신에게 나라는 타인이 머무는 이유. 우리는 서로의 눈으로 울어주기 위해 만났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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