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사 쪽을 외면한 채 지낸 그 이틀 동안에는 만세 주장 앞길 멍석 위에 널린 지에밥을 봐도 뱃속의 회가 전혀 동하지 않았다 서울 계집애의 그 새하얀 낯꽃이 끊임없이 눈에 밟히는 바람에 그러잖아도 재미를 못 붙여 애를 먹던 학교 공부가 한결 더 부실해졌다.
눈물 구덩이에 퐁당 빠져 허우적대는 눈동자로 명은이 외할머니는 내 얼굴을 간신히 건너다보았다. 때깔이 고운 한복 차림에 기품이 넘쳐 나던 명은이 외할머니의 모습이 한순간에 와르르 허물어져 내리는 순간이었다. 마땅히 그래야만 될 성싶어 나는 덮어놓고 고개를 끄덕이는 동작만 되풀이했다.
“건호야.”
일껏 내 이름을 불러 놓고도 명은이는 한참이나 더 뜸을 들인 다음에야 가까스로 뒷말을 이었다.
"네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 내 손으로 한번 만져 보고 싶어“
"..."
참으로 난처한 순간이었다. 틀림없이 집 안 어느 구석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 명은이 외할머니를 의식하면서 나는 잠시 망설였다.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나는 결국 명은이 손을 끌어다 내 얼굴에 대 주었다. 그리고 두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촉촉이 땀에 젖은 손이 내 얼굴 윤곽을 천천히 더듬어 나가기 시작했다. 명은이는 내 이목구비 하나하나를 차례차례 신중히 어루만졌다.
"얼굴이 아주 잘생겼구나. 나한테 얼굴을 보여 줘서 고마워.“
난생처음 잘생겼다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홧홧 달아오르는 낯꽃을 주체할 수가 없어 도망치다시피 관사 앞을 떠나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