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이제 오늘이네) 주요과목 지망 예비교원들의 2차 면접시험이 있는 날이고, 내일 모레는 같은 시험을 비교과 지망생들이 치르는 날이야. 주요과목에도 비교과에도 1차시험에 합격한 친구를 둔 나는 오늘도 전국 각지로 시험을 보러 가는 그들을 배웅했고, 내일도 그럴 예정인데, 그러고 나서 다시 펜을 잡으며 나의 공부에 대해 생각해 보았어.
스스로를 수험생이라 규정짓고 나서 두 번째 새해를 맞이하는 중인데, 원점으로 돌아온 나는 정말로 '원점'이라고밖에 표현할 말이 없을 정도로 모든 게 새롭더라고. 나 작년에 분명히 뭔가 되게 힘들었고 되게 지쳐 가며 이런거 저런거를 했었는데, 그래서 뭘 공부했었는지는 기억이 안 나. 어? 왜이렇게 다 새롭지? 싶어서 계속 떠올려봤는데도. 그제서야 깨달은거야. 난 작년에 공부를 했던 게 아니었네. 그냥 힘들어했던거네. 실패할까 봐 두려워 막 달려들 엄두는 안 나는데 가오는 못 잃으니까, 스스로의 힘듦에 명분이라도 입혀주고 싶어서 공부하는 시늉만 하며 한 해를 보냈던 거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냥 시간이 흐르는 걸 견디며 나 스스로의 무위함이 나를 가장 많이 상처입혔었네.

성욱 오빠가 지난 번 편지에 이렇게 써 주었었던 거 같아. 고시라는 게 동전 뒤집듯이 결과가 나뉘는 거라서 힘들 거라고. 맞아 나는 갖은 노력으로 여기까지 끌어올려 놓은 내 자존감이 또 한 해의 수험생활 후에 대면할 지 모를 불합격 통보로 다시 바닥을 칠까 두려워. 자존감이 낮다는 건 너무 힘들어, 집중력은 기실 스스로에 대한 확신의 다른 말인데 나는 공부와 동시에 불안해하기의 과업까지 매일매일 수행해나가야 하는걸. 그 똑똑한 사람들 25명 중에 24명이 떨어지는 시험인데 내가 어떻게 붙어, 나 엄마를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면 어떡해 한 해 한 해 내 주변의 사람들이 차례로 나를 두고 떠나면 어떡해....

그래도 이 일 분 한 시간 하루를 또 다시 버텨내야지. 취직과 졸업이란 이 관문 때문에 죽고 싶었던 적 많았지만 이번에 합격 못하면, 그때 죽어야지. 그땐 진짜 죽어야지. plan B를 만들어놓지 못해서 이래, 작년의 나는 불안에 잡아먹혀 정신 못 차리고 일년을 내내 거의 꿈꾸는 듯한 감각으로 걸었던 거 같아.
우리 과 선배 중에 한 분이 그러셨다. 그렇게 힘들면 하지 말라고. 간사한 나는 비겁해서 평소엔 이 시험이 얼마나 어렵구 얼마나 잔인하구 그런 것들을 설명하고 다니다가도 그렇게 말을 들으면 내가 멍청해서 못 하나 하면 하지 이런 생각이 드는 거야. 너무 철 없지?
그래서 더 멀리 있다고 느껴지는 걸까. 나는 25년을 살았어도 내 주변 모든 사람 길 가다 마주치는 사람들에게마저도 예쁨 받고 싶은 어린앤데 선생님이 된다는 것은 미움 받더라도 이끌어 주고 기다려 주는 것이니까. 사랑 받고 끼 부리고 싶은 사람이 하는 일은 아이돌이지 교사가 아니니까.
명진이가 그랬어 언니가 합격하든 못하든 언니는 소중한 사람이라고.
내게 건네주었던 응원은 그 자체로 나의 갑옷 혹은 성경구절 뭐 그런 것이 되었지만 나 평생을 갑옷에 의지해 살 수는 없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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