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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에 해당하는 글들

  1. 2018.10.30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내게 친절하지 않은 사람에게 친절하지 않을 것

갑질이란, 최소한의 인격적 대우조차 갖추지 않은 천박한 갑과 최소한의 인격적 대우조차 요구하지 않는 무력한 을의 합작품이다.

 

 떳떳한 자신에게 자부심을 느낄 것

세상에는 부끄러워해야 할 부가 있듯이 떳떳한 가난이 있다.

 

모욕하는 삶을 살지 않을 것

혐오주의의 원인을 중산층 붕괴로 이야기한다. 지위에 불안을 느끼는 이들이 누군가를 내몰아 자신의 사회, 경제적 지위를 되찾고자 한다는 것이다. 모멸감의 저자 김찬허 교수는 웬만큼 잘나지 않으면 인정받지 못하는 세상에서 그 공허를 채울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 타인에 대한 모멸이라 이야기했다.

 

누군가의 말에 흔들리지 않을 것

누군가 당신에 대해 비난이 포함된 판단을 내린다면 당신이 알아야 할 점은

첫째, 그건 한 개인의 지극히 주관적 견해일 뿐 그 사람이 솔로몬이나 프로이트는 아니라는 것.

둘째, 그것이 당신을 향한 비난이라면 해야 할 일은 화를 내거나 슬퍼하는 게 아니라 비난의 진실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것, 그 비난이 진실이라면 안 좋은 점을 고치는 계기로 삼으면 되는 것이고, 그것이 그저 상대 내면의 문제에서 비롯된 거짓이라면 그냥 개가 짖는다고 생각하면 된다는 것.

셋째, 만약 개가 계속 짖으면?

가만히 듣고 있지 말고, 마땅히 그 책임을 물으시라.

 

스스로에게 변명하지 않을 것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한 변명에는 사실 그 자신도 속지 않는다. 생의 반대말은 죽음이나 퇴행이 아니라 방어의식이다. 방어의식은 사람을 영원히 자기 삶 바깥에서 서성이게 한다.

 

  누구의 삶도 완벽하지 않음을 기억할 것

우리는 각기 다른 상처와 결핍을 가졌으며, 손상되지 않은 삶은 없다.

 

 보통의 존재로 충분히 행복할 것

어른의 사춘기는 자신의 평범함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자신의 삶을 채울 수 있을 때 종결된다. 모차르트가 살리에르보다 행복했다는 증거는 없다.

 

 나의 삶을 존중할 권리를 말할 것

현실의 많은 이들이 육체노동자로 살아가며 평범한 직장에서 을의 삶을 마주한다. 드라마 세트장 같은 곳에서만 살 줄 알았던 이들이 어린 시절 자신이 무시했던 삶으로 들어와 있다는 것. 그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나. 미래에 대한 과대망상과 차별의 OS가 평범한 자신에 대한 수치심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무시와 추락에 대한 불안을 동력으로 공부하지만, 삶의 동력으로 불안과 긴장만이 남았을 때는 무엇으로도 풀 수 없는 마음의 만성피로가 만들어진다.차별과 멸시에 대한 공포로 얻은 성취에는 오만이 뒤따른다.

만약 당신이 끊임없이 불안을 충전하고 있다면, 혹은 당신이 꿈꿨던 미래와는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는 자신에게 수치심을 느껴야 한다면, 스스로에게 알려주어야 한다. 치킨 배달을 한다 해도 공장에서 미싱을 한다 해도 삶이란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는 것일 뿐 그 어떤 삶도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열심히 사는 것도, 열심히 배우는 것도 마음껏 하시라. 하지만 누구의 삶도 모욕할 수 없다.

 

 나다운 삶을 찾을 것

어린 시절, “너는 아직 어리기 때문에 어른을 따라야 한다는 말은 아이가 나약하고 열등한 존재임을 각성시켰다. 많은 부모는 아이의 나약함과 열등함을 이유로 자율성을 허락하지 않으며, 아이가 어른이 되는 [과정]을 빼앗았다. [과정] 없이 어른이라는 [결과]만 남은 이들은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 내리는 것을 두려워하기에 나이를 먹어서도 멘토를 찾아다닌다. 프리랜서가 된다고 해서 나다운 것이 아니고 특이한 취향을 가졌다고 해서 나다운 것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며 삶을 일구는 것이 나다운 삶이다. 물론 많은 양의 지성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의존심을 버린다는 게 두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고민과 위기의 순간을 지났을 때, 비로소 스스로가 신뢰하고 존중할 수 있는 나다운 삶이 시작될 것이다.

 

 누구의 기대를 위해서도 살지 않을 것

부모님의 기대를 충족하기 위해서 살아가는 건 사랑이 아닌 채무감이자 강박일 뿐. 내 삶을 책임지는 것이 나의 몫이라면 자식이 부모 마음대로 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건 부모님 몫이다. 우리를 짓누르는 것이 부모님에게 받은 경제적인 지원에 대한 채무감이라면 살며 최선을 다해 갚으시라.

 

 나 외엔 무엇도 되지 않을 것

우리에게 절실한 건, 우리를 증명할 명함이 아니라 누구에게도 증명할 필요 없는 나 자신이 되는 것이다. 직업이란, 보다 자기다워지는 일이지 없는 자아를 창조하는 일은 아니다.

 

 스스로 선택할 것

삶에 완벽한 답안지는 없으나 어떤 답을 내리든 스스로 책임질 수 있다면 당신의 모든 선택은 정당하다.

 

 자신이 빛날 수 있는 자리에서 살아갈 것

엄청난 재능만이 가치있다는 생각에 갇히면 자신의 재능과 장점에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게 된다. 재능의 크기는 점점 늘려갈 수 있는 것이고, 그 크기에 따라 다른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재능의 크기보다 중요한 건, 자신이 어떤 재능을 가지고 있는지 [구체적으로]아는 것이다. 그렇다면 재능이란 무엇인가? 어떤 일을 남들보다 [쉽게]할 수 있는 일이다. 자본주의 최대 비극은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재능은 무가치해지는 데 있다.

 

 삶이라는 모호함을 견딜 것

삶이란 결국 모호함을 견뎌내는 일이다. 점을 보는 이유는 다 잘 될 거라는 그 한 마디를 듣기 위해서다. 점쟁이 대신 자신의 힘을 믿어라.

 

 문제를 안고도 살아가는 법을 배울 것

내가 아닌 누구도 내 삶을 대신 돌봐주지 않는다. 살다가 어떤 불행을 마주쳤으며 그에 충분히 슬퍼하고 괴로워했다면 그 원치 않는 사실과도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익히자. 당신의 고단함이 별것 아니라서? 혹은 다들 그렇게 사니까? 그런 이유가 아니라, 당신에겐 가장 애틋한 당신의 삶이기에.

 

 진짜 해결책을 찾을 것

사실 비는 때가 되면 그칠 테고, 그들의 제물은 결코 비구름에 영향을 끼칠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은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음으로써 안심한 거다. 이렇듯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생겨난 불안과 두려움, 공포를 달래기 위해 동원되는 것이 마술적 사고다. 만약 당신이 어떤 지점에서 계속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 그동안 가짜 해결책에 매달리고 있던 건 아닌지 문제의 실체를 제대로 마주하지 못했던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결국은 두려웠던 문제의 실체와 마주하고 걱정을 계획으로 치환시켜야 한다.

 

 충분히 슬퍼할 것 ( )

우리는 살면서 많은 것과 이별한다. 때론 소중한 사람과 이별하고, 사랑받지 못한 채 지나가버린 어린 시절과 이별하고, 자신이 품었던 이상과 이별하고, 젊음과 이별하며, 자신이 믿어온 한때의 진실과 이별한다. 이 모든 이별에는 길든 짧든 애도가 필요하다.

애도란 마음의 저항 없이 충분히 슬퍼하는 일이다. 그런데 우리는 고통을 마주할 용기가 없어 억지로 외면하거나 억누르고 혹은 자신의 마음을 미처 이해하지 못해 자기 자신에게 슬퍼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

프로이트는 충분한 애도를 하지 못했을 때 우울증이 발생한다고 했다. 감정이란 밖으로 새어나오지 않도록 틀어막는다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에 애도의 과정을 거치지 못한 상실은 씻겨 내려가지 못한 채, 우울이라는 웅덩이로 고이고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한다.

만약 당신에게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과 우울이 머무르고 있다면 우리는 그 실체를 찾아야 한다. 꽁꽁 숨어서 한눈에 보이지 않을지라도 질문하며 단서를 찾고 탐문하여 그 실체에 다가서자. 그 실체를 안다 해도 수사의 종결이지, 사건의 종결은 아니겠으나, 실체를 객관화하는 것만으로도 감정에 압도되지 않을 수 있고, 우리는 충분히 애도할 기회를 얻는다.

그러니 당신의 심연에 묻는다. 당신은 무엇과 이별하였는가.

 

 불안하다고 무작정 열심히 하지 말 것

세상에는 우리의 불안을 이용해 이익을 얻으려는 사람들이 도처에 널려있고, 뭣이 중헌지를 모르면 현혹되는 법이다. 그러니 단지 열심히 살아가는 자신을 증빙하기 위해 사람들의 무리 안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불안에 쫓겨 열심히 하는 건 그만두시라.

 

 그럼에도 누군가와 함께할 것

이 신세계에 시대착오적일수도 있지만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누군가와 함께할 때 가장 행복하다. 이건 문학이 아닌 진화심리학의 영역이며 감성이 아닌 본능적으로 그러하다. 당신에게 어떤 상황이 오든, 당신을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는 우정을 찾아라. 나의 부족함을 비웃지 않을 거라는 믿음. 그런 믿음이 가는 누군가에게, 믿음이 가는 누군가가 되어주는 것. 그것이 가장 좋은 안정제이자 행복이란 추상적인 단어의 유일한 실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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