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는 가볍게 걸려도 독하게 걸려도 낫는 데에 딱 일주일 걸린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처음에는 목구멍이 붓고 쓰리다. 말도 하기 어렵다. 그러다 점점 목은 가라앉고 콧물이 나기 시작한다. 콧물이 멎을 즈음에 코 주변부는 계속 휴지와 마찰한 탓에 피부가 벗겨져 벌개져 있다.
  어제 결혼식장에서 찍힌 나도 들여다보니 죄 벌건 코를 하고 있다. 그리고 감기에 걸린지 따악 일주일이 되는 이 일요일 밤에 나는 내게서 더이상 콧물도 나오지 않음을 인식한다. 오전만 해도 안 이랬다. 저녁만 해도 안 이랬다. 밤이 되어서야. 정말 시계로 잰 것처럼 딱 일주일이 되어서야 나았다. 이게 무슨 일이야. 감정에 고통스러워하며 멀어지고 싶다고 생각하며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읽는 중이었다.
  최근 중학교에서 시간 강사 일을 했다. 중학교는 오랜만이었고, 교육을 업으로 삼는 이들의 여유롭고 나태한 친절은 언제나 받기 좋은 종류였다. 그리고 거기엔 반할 만큼 멋들어지게 빚어진 젊은 정상 남자 교사가 있었다.
  나는 주류 감성에서 벗어나본 적 없을 것 같은, 그이의 주변에 휘갑처럼 단단한 정상성이 둘려 있을 것 같은 남자들을 동경해왔다. 남성은 내가 결코 못 돼볼 인간종류이며 배제됨을 탈락됨을 걱정할 일 없을 정상성 또한 뼈에 새겨진 길고 그리운 갈망이다. 키가 크고 어깨가 넓고 처음 보는 나에게도 서스럼없이 짓궂은 농담을 하고(그것이 내게 기분나쁘지 않으리라는 그간의 사례들 즉 자신감에 찬 표본들을 갖고 잇고) 비슷해 보이는 나이를 감안했을 때 낙방한 적 없이 임용에 합격했을 것이었다. 학교 생활의 궂은 면은 내 몫이 아니라는 듯 밝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필요 이상의 친절을 베풀지 않았다. 나는 속절없이 그의 정상성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이번 생에서는 어쩌면 내게 더 없을지 모른다 예상했던 남성과의 연애를 상상했고, 아니 늘 그랬듯 선망했고, 그러나 곧 내가 가진 정상성은 그의 것에 비해 턱없이 갯수가 부족함을 실감하고 시들시들해졌다.
  나는 정교사가 아니었다.(이제 되면 되는 거 아니냐고 모두가 말하지만 나는 이제 정말 시험 공부를 안하고싶다) 나는 아마 그의 백 배 정도를 사유할 것이었다. 나는 아마 그의 백 배 정도로 타인의 고통을 고통스러워할 것이었다. 나는 아마 그의 백 배 정도로 환경과 지구의 끝을 실감할 것이었다. 나는 아마 그의 백 배 정도로, 앞으로는 행복만 하고 싶다가도 마음이 자꾸만 과거로 돌아가려 할 것이었다.
  정상성을 띈 삶. 거액을 들여 하루면 끝날 결혼식을 치르고 2인이 되고 오늘 저녁은 누가 차릴 것이며 부모님 생신은 어떻게 챙길 것이며 누가 덜 손해를 볼 것이며 더 손해보는 상대를 어떻게 외면할 것이며 자잘자잘한 마음 속 스크래치와 실생활의 빚을 적립하다가도 또 어떻게 혼자 상대를 변제해줄 것이며 그러다가도 적당히 시간이 흐르면 신념 혹은 불안이 물러지고 아이도 갖게 되고 그때부터는 아이를 둘러싼 모든 것에 목숨을 걸게 되고 집 비교하고 차 비교하고 학원 비교하고 그런 삶, 나는 그런 고민을 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으리라 애초에 포기한 삶, 시간강사를 하며 정상남자를 마주치는 동안 자꾸만 이성애적 욕구가 생겨나려 하고 그래서 배제해두었던 그런 삶의 가능성이 내게 고개를 들어 존재를 알리려 하자, 나는 미용실에 가서 나름 꾸준히 기르던 머리를 잘랐다.
  그렇게 스스로의 여성성을 거세함으로써 정상적인 삶의 반열에 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구차한 희망으로부터 자진 탈락하려 했다.
  그런데 우스운 거지. 감기의 단서는 여기부터 드러난다. 머리를 자르면서도 나는 사실은 예쁘고 싶었던 거야. 아주 사실은 일말의 좁은, 취향의 영역에 속하는 여성성 정도는 남겨 두고 그 아슬아슬한 남성 간택의 가능성을 즐기고 싶었던 거야. 그런데 자른 머리가 구렸다. 취향의 영역에도 못 드는 촌스러운 머리가 도출됐다. 나는 토요일에 그렇게 머리를 하고 너무 불안해서 사실은 정말로 내게서 여성성이 아예 사라지길 바랬던 건 아니었어서 내내 방황하다 일요일 밤 얇은 원피스를 입은 채로 긴 산책을 했고 그렇게 감기에 걸렸다.
  시간강사 일은 끝났고 그 정상남자교사와는 이제 다시 만날 일 없다. 애매한 작별 인사를 했다. 나는 삶은 결국 내게 가장 좋은 때에 가장 좋은 것을 주리란 믿음을 노력 끝에 얻었다. 만남도 이별도,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듯, 언젠가 나는 내게 꼭 맞는 삶을 살게 되리란 예감도 있다.
  하지만 이번 감기는 기록해두고 싶었다. 강바람과 함께 감기를 예감하며 걷던 그 날 이미.

 

 

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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